[영화 '오두막'] 불행을 대하는 삶의 자세




 

아래는 영화 <오두막(The Shack, 2017)>에 관한 이야기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가족 여행 중 사랑하는 막내딸 미시를 잃은 남자 맥에게 의문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 편지로 인해 맥은 오두막으로 향하게 되고, 거기에서 미시의 사라진 흔적을 찾게 되는데...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만큼 큰 불행이 있을까.

맥은 가족여행 중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딸을 잃었다. 캠핑 여행 중 호수에서 둘째 딸이 보트에서 장난치는 바람에 큰 아들이 물에 빠지자, 이를 구하러 간 사이 흉악범이 막내를 납치살해한 것이다. 병으로 혹은 사고로 가족을 잃었어도 그 트라우마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영화처럼 끔찍한 범죄로 인한 경우라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듯 싶다. 심지어 맥의 가족은 미시의 시신을 찾지도 못했다. 그 아픔과 자책을 어떻게 해야할까.

맥의 가족은 그 날의 불행으로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게 살아가는 맥.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을 잃어다고 자책하는 케이트와 조쉬. 유일하게 중심잡고 맥을 위로하는 이는 아내인 낸이지만, 그녀 역시 막내딸을 잃은 슬픔이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눈 내린 어느 날 맥에게 배달된 편지 한 통으로 그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막내 딸을 잃은) 그 오두막으로 오라는 누군가의 편지.

그곳에서 맥은 절대자를 만나, 불행에도 불구하고 관계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자를 용서함으로써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을 터득한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미시가 행복하고 지내면서 그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또한 세상사를 내가 심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때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큰 슬픔으로 변하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생각해도 그 아래 지하실을 뚫고 더 깊은 바닥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불행을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하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힘든 것은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누가 나를 대신하여 인생을 살아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잠에서 깨면 씻고 옷을 입어야 하고, 회사는 출근해야 하며, 밥은 먹어야 한다. 불행은 우리의 삶을 흔들지만, 우리의 삶은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계속되어야 한다. 어쩌면 진짜 불행은 불행 그 자체가 아니라, 불행을 마주하고도 일상을 버텨야하는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불행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내 편인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종교가 없다면 개인적인 신념의 차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마지막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맥은 그 오두막에 실제로 가지 못했다. 오두막으로 가는 길에 발생했던 교통사고로 맥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절대자를 만난 건 그 동안의 일이었던 것이다. <오두막>은 기독교의 관점에서 절대자를 성부와 성자, 성령으로 풀어냈지만, 인간 누구나 마음을 지니고 있고, 그 안에는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기에 굳이 종교의 의미로만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두막에서 맥은 신(절대자)이 만든 맛있는 음식도 먹는다>

 

내 편인 누군가와 함께 하기에 시간 역시 내 편임을 깨달아야 한다.

 

시간은 결국 흐른다. 일련의 사건으로 흐트러졌던 질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를 잡는다. 가까이에서 볼 때 마구 뒤섞여있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만 멀리서 보면 커다란 질서 안에 놓여있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믿고 지금 힘든 순간을 버텨야 한다. 더 큰 그림을 보고, 더 먼 미래를 보면서 지금 혼돈의 순간을 견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시간이 내 편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상황은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이 순간이 결코 남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만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즐겁고 행복해야할 삶을 살면서 두렵기만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결국 죽기 때문이다. 결국 죽어야 하는 필멸자(必滅者, Mortal)인 인간이 현상에서 오는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진심으로 행복지기 위해서 해야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기에, 그 어떤 수든지 0으로 곱하면 결과가 0이 되는 것처럼 현실의 불평등에서 오는 모든 고통은 죽음 앞에서는 부질없어 진다. 인간이 겪는 가장 커다란 고통인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역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대명제 아래 단지 내게 닥칠 시간의 문제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오두막>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공허로 빠지는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이후에는 기다림과 고통이 없는 또다른 세계가 펼쳐짐을 영화는 멋지게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오두막>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아름다운 감동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마음이 허전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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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 6. 까지 총 0회 수정)